매년 작업의 80%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스튜디오가 있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작업을 만드는 이들의 방식은 "디자이너의 일"에 대한 통념을 흔든다.
스튜디오 단편선은 2018년 시작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홈페이지에 작업 포트폴리오가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작업보다 앞서지 않기를 바란다. "작업이 먼저 말하고, 우리는 그 뒤에 있다." 그들이 인터뷰에 응하는 동안 한 말이다.
이름을 지운다는 것
— 작업의 80%가 비공개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비율이 가능한가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에요. 클라이언트 중에 자기 브랜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분들이 많아요. 리브랜딩 직전이거나, 내부 시스템 작업이라거나. 그런 일을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그런 일이 더 재밌었어요. 표지 없는 책의 안쪽을 만지는 느낌."
— 그런데 디자이너로서, 자기 이름이 안 알려지는 건 손해 아닌가요?
"단기적으로는요. 하지만 우리는 신뢰가 더 길게 간다고 봐요. '저기 이름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평판이 어느 순간부터 따라왔어요. 익명이라는 게 오히려 우리만의 시그니처가 된 거죠."
익명의 윤리
— 작업물에 본인들의 인장을 남기지 않는 게 윤리적인 결단인가요?
"윤리라기보다는 약속이에요. 클라이언트가 정말 자기 것이 되도록. 우리가 만든 흔적이 너무 짙으면, 시간이 지나서 그 브랜드의 정체성이 우리에게 묶여요. 그건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음 작업으로
— 앞으로의 방향이 궁금해요. 여전히 익명으로 갈 건가요?
"네. 다만 조금씩 형태가 바뀌어요. 최근에는 익명으로 일하는 다른 디자이너들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일을 시도해요. 혼자보다 함께 익명일 때, 더 큰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그건 새로운 종류의 스튜디오겠네요.
"이름 없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 라고 부르고 싶어요. 우리는 그 자리를 천천히 만들어 가는 중이에요."
- 참고 자료스튜디오 단편선 — 공개 작업 아카이브 (단편선닷컴)
- 도움 주신 분스튜디오 단편선 운영진 두 분 (인터뷰 응대)
촬영 — 퍼스펙티브 비주얼팀